불교란 무엇인가?②
오늘 내용을 ‘불교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다’고 하는 그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불교를 통해서 어떤 불가사의한 신통력이라든지 미래를 예측한다든지 어떤 풀리지 않는 문제를 신비한 얘기나 그러한 어떤 힘에 의해서 그것을 이끌어 주고 해결해 주는 그러한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행여 하시고 계시는 분이 있지 않나하는 염려에서 하는 것입니다.
앞서 예를 든 그 거사님은 평상시에는 정상적인 불교를 공부했지만 어딘가 마음 한구석에는 불교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뭔가를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될 수 없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불교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마침 떨어진 것입니다. 당신의 저 한구석에 숨어있던 그 생각하고 사도를 가르치는 그 거사님의 말하고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쪽으로 심취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불교를 공부하더라도 분명히 오늘 제가 소신을 가지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통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통의 삶이 불교이지 그 외에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남산을 올라가는 데에는 가는 과정에 별의별 것이 다 있습니다. 버스도 탈 수 있고 택시를 탈 수도 있겠고 또 여러 사람도 만나고 가는 과정에서 자빠질 수도 있고 때로는 미끄러질 수도 있고 그러한 과정이 틀림없이 있기는 있는 데 그것이 목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보통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그 삶을 어떻게 보다 아름답게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그러한 지극히 상식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곳에서 바탕을 두고 불교를 공부하고 믿어야지 하루에 천배, 만 배를 부처님 전에 한다고 해도 그러한 요행수라든지 어떤 신비한 힘이라든지 그야말로 사사로운 삿된 것을 염두에 두고 불교를 믿고 그러한 생각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자세는 이 시간 이후부터는 우리가 바로 잡아야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중국에 백낙천이라는 분은 당나라 송나라를 통해서 팔대 문장가에 드니까 그 두뇌라든지 그 지성이라든지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아있는 그러한 지성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그 당시의 불교에 대한 온갖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도림道林선사라는 훌륭한 스님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그 스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까 해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방에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나무위에 올라 앉아 공부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밑에서 보니 나무위에 올라 앉아 계시는 스님이 무척 위태로워 보였어요. 그래서 백낙천이
“스님, 어찌 그토록 위험하신 데 계십니까? 위태로워 보이는 데 내려오시지요!”
한마디를 던지니 도림선사는
“내가 위태로운 것이 아니라 그대가 위태로운 것이니라. 그대는 땅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대야말로 참으로 위험천만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요.”
이것이 처음 인사말씀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말하자면 천하의 백낙천이라는 문장가가 왔으니 그냥 계실 수가 없어서 내려오셔서 차를 대접하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에 백낙천이
“제가 이런 저런 훌륭한 스님들을 찾아뵙고 공부를 했습니다. 불교라는 것에 대해서 스님은 무엇으로 저를 인도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 어른들이 자녀에게 항상 하시는 말씀인 불교의 칠불통게七佛通偈입니다.
諸惡莫作 衆善奉行(제악막작 중선봉행) 나쁜 행동은 하지 말고 착한일은 받들어 행하라
自淨其意 是諸佛敎(자정기의 시제불교) 스스로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불교이니라.
즉 그 마음을 청정하게 가지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요행수라든지 횡재수라든지 사사로운 것 신비로운 것들을 가지고 있는 그 마음들을 항복받아 그 마음을 비워 버리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을 들은 백낙천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씀이라 고개를 끄떡거렸습니다. 스님들 말씀으로 하면 백낙천이 한방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다담茶談을 나누다가 백낙천이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평소의 마음이 도이니라.[平常心是道]”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백낙천의 눈이 환히 뜨였습니다. 눈이 뜨였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이 백낙천이도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주 이상하고, 신비하고, 불가사의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손가락 까딱 하면 산이 움직이는 식으로 불교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신비한 것이 불교인 것으로 짐작을 하고 있었는데, 평상심이 도라고 하니까 거기에서 그야말로 마음이 환히 밝아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자신의 평상심을 만나게 된 것이죠. ‘아! 이것이야말로 진짜 도고, 이것이야말로 불교이구나. 불교라고 하는 것, 도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다’하는 지극히 근본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그 자리로 비로소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병이 나은 것입니다. 사실은 불교라는 것에 대해 그 나름대로의 병을 키워 왔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실은 불교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 나름의 병을 하나씩 키워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 병의 씨앗은 불교와 인연을 맺을 때 안고 들어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병을 절에 다니고 법회에 자주 참석함으로 인해서 자꾸 키워가는 거예요. 아무리 평소의 마음이 불교이며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가 도라고,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고 너무나 쉬운 말씀이어서 한걸음도 옮길 필요가 없는 그 이야기를 해 주어도 ‘아니야. 그 스님 말씀은 틀렸어. 뭔가 불교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이고, 절에 하나를 시주하면 열 개를 건지고, 열 개를 시주하면 백 개를 건지는 것이 불교이지, 그렇게 평범하고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는 지극히 평범한 그런 것은 불교가 아니야’ 하며 부정하면서 ‘불교는 뭔가 아는 소리를 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또한 사귀邪鬼를 떼어서 홀연히 병이 낫는 그런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인데, 저 스님은 뭘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을 혹시 가지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불교라고 하는 것을 그런 이상한 요사스러운 그런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어서 삿된 마음의 병이 나아야지 오히려 불교를 통해서 병이 더 커지고 병이 하나 더 생기고 사람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면 그것은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불교라는 인연을 통해서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얼마든지 그런 일도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고 또 스스로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불교의 정상적인 가르침이고 불교의 본래적인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마음속에 갖고 보통 삶을 살아가는 그 자체가 불교라고 하는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불교를 믿고 실천해야 옳은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요즘 뭐 이름을 대면 다 알 수 있고 또 사찰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데 계시는 큰스님들께서 뭐 귀신을 뗀다, 병을 고친다 해서 여러 사람들이 바쁘신 모양이고 또 그러한 장소가 곳곳에서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구룡사에서는 음력 7월 15일 백중을 맞이하여 부모님의 은혜와 선망부모를 천도하는 지장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예부터 불교에서는 7월을 효도의 달이라고 하고 7월 15일을 효도의 날이라고 합니다. 여러 불자님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또 목련존자가 일찍이 본보기를 보여줬던 칠월 보름을 맞이하여 모든 인연 있는 선망부모와 형제들과 주변의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하여 한번쯤 그 분의 명복을 기리는 그러한 생각을 곁들여서 함께 하겠다고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지내고 천도제를 올리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의 의례를 행하면서 여기에다가 또 이러한 것을 통해서 무슨 병이 낫는다든지, 무슨 잡신들린 것이 떨어진다든지, 이러한 것들을 자꾸 마음속에 생각해 가지고서 그러한 방향으로 흐른다면 지극히 전통적이고 정상적인 목련존자가 부모님을 천도했던 의미와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 당시의 천도제는 칠월 보름날, 해제날을 맞이하여 각처에 흩어져 공부를 하던 제자들이 한곳에 모입니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 때 반승飯僧이라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스님들을 모셔다가 공양을 올리는 의식인데 부처님 당시의 천도제는 칠월 보름날 해제를 맞이하여 모인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 바로 천도제였습니다. 그것이 천도제의 의식이지, 다른 것이 아니었어요. 그러한 천도 의식을 우리가 그 날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한 번 그러한 아름다운 효행을 본받고자 하는 그러한 뜻에서 지내는 것이지 다른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기다가 어떤 사사로운 생각을 불어넣는 일들이 근래에 사찰에서 그것이 불교의 전부인양, 불교의 최종 목적인 양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경향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그렇게 아는 것은 오히려 병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고, 삿된 것으로 이끌어 가는 그러한 것이라는 것을 정법구현의 도량에서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불교를 생각하시는 분들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평상심이 도라고 했고, 또 어떤 도인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수십 년 수행을 해가지고 도를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도 그 결론적인 말씀은 ‘평상심이 도다’라고 하는 그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무슨 이상한 주문이나 외우고 귀신이나 떼고 신비한 것이나 보이는 그러한 것을 행하는 도인 스님들은 한 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휴식한다. 이런 너무나도 어이없는 표현, 그것이 수십 년 도 닦은 소리냐? 라고, 사실은 우리가 힐난을 해야 할 만한 그러한 대답을 하십니다. 어떤 것이 불교입니까? 어떤 것이 도입니까? 라고 했을 때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쉰다. 이것이 불교이고 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십 년 피나는 고행 끝에 뱉어낸 말씀이 바로 그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야말로 고행도 하지 않고 하룻밤 철야정진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공짜로 그 결론을 얻어냅니다. 이러한 것은 선배님들의 고행의 결과입니다. 뭐 신기한 말, 아주 이상한 말, 정말 태양처럼 빛나는 말 그런 복잡한 말로 절대 상상하지 마십시오. 저는 최소한 부처님 앞에 앉아서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처님 밥을 먹고 그러한 식으로 신도님들을 유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